뛰어난 투자와 기부로 흔히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t).
지금 93세가 된 이 투자의 귀재가 세간에 전하는 어록이 많습니다. 한번은 전용기를 10년 몰았던 조종사 마이크 플린트는 자신의 보스가 어떻게 투자마다 성공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버핏은 그에게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 25가지를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자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5가지만 골라 동그라미를 표시하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스무 개는 어떻게 할 건가?”
“급한 것부터 하고 나머지는 틈틈이 노력해야지요.”
“아니, 틀렸네. 자네가 동그라미 치지 않은 건 모두 피해야 할 목록(‘avoid at all cost list’)일세. 다섯 개 모두 달성할 때까진 거들떠봐선 안 되네.”
이게 종목 선택에 승부를 거는 투자업계에서 유명한 버핏의 ‘5/25 rule’입니다. 사람들은 최우선의 목표를 실천하는 동안에도 나머지 목표들을 여전히 염두에 둡니다. 가능한 많은 목표를 달성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조언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가진 자원과 시간은 제한적입니다. 특정한 분야를 선택하고 거기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경영전략. 이 ‘선택과 집중’의 개념은 경영학계 석학인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이론화했습니다. 기업이나 국가의 운영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이 투자전략이 새로운 건 아닙니다. 위치를 잘 잡고 한 우물만 파는 전략입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와는 반대쪽 전략입니다. 집중과 분산 어느 쪽이 더 좋을까. 여기에 답은 없습니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려면 위험이 따르더라도 한곳에 집중하고, 안전한 쪽을 더 원하면 투자를 분산하는 게 유리합니다.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양궁, 태권도, 유도, 펜싱, 사격, 쇼트트랙 등을 선택하고 집중한 결과입니다. 모든 국민이 함께하는 사회체육 대신 엘리트 체육 정책 덕분에 우리는 올림픽 때마다 이들 종목에서 풍성한 메달로 국민의 자긍심을 높입니다. 이 수익률-위험 간의 트레이드 관계는 직업 선택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이 늘 빠듯하고 내부 경쟁으로 직업의 안정성이 낮더라도 빠른 승진과 높은 연봉을 원하는 사람에겐 대기업이 좋고, 월급이 적더라도 보장된 정년으로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공무원이나 공기업 쪽이 좋습니다. 월급쟁이보단 자기 사업으로 큰돈을 벌려면 망할 때 망하더라도 벤처 창업하는 게 낫습니다. 기대수익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high risk, high return’은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문제는 한정된 자원과 시간입니다. 가치 있는 5가지 목표를 정해 시간과 역량을 집중하는 대신 20가지 포기해야 하는 기회는 기회비용입니다. 기업이 성공하려면 고객의 마음에 자사의 상품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지 포지셔닝부터 분명해야 합니다. 여기엔 작은 사업장,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불리할 건 없습니다. 감성의 터치로 알짜고객을 확보하는 고급 음식점과 펜션, 명품매장의 차별화전략도 선택과 집중입니다. 이건 항공우주 종합대학으로 특성화된 우리 대학 KAU도 마찬가지입니다. SKY 대학들과 경쟁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청년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담임선생님 없는 대학 생활에서 혼돈과 갈등을 겪는 건 온실을 벗어나 허물을 벗겨내는 대학생의 성장통입니다. sophomore의 그리스어 어원처럼 대학 2학년은 ‘지혜로움(sophos)’과 ‘우둔함(moros)’이 교차하는 갈등과 성숙의 시기일 겁니다. 인생행로에서 목표가 뚜렷해지는 단계가 대학입니다. 여러 선택지를 놓고 미래를 설계하고 목표를 선택하는 사유(思惟)의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턴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옵니다. 인생을 건 승부가 시작되면 이것저것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사람보다는 생각이 단순한 사람이 성공합니다. 표적이 명료해야 집중이 쉽기 때문입니다. 아래 링크는 지난 5월 우리 대학의 차별화전략에 대해 한국대학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평균적 인간? 그런 거 없습니다.
평균과 분산. 여러분이 배운 평균값(mean, μ)과 표준편차(σ)는 정규분포를 설명하는 통계량입니다. 성적, 소득, 만족도, 키, 체중처럼 세상의 모든 현상이 정규분포라면 이해하기 한결 쉽습니다. 통계학이 일단 정규분포를 가정하고 시작되는 이유입니다. 설명하긴 쉽지만, 사람과 사람 간에 평균적인 인간이란 존재할까요? 사람 능력을 판단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1940년대 말, 미 공군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트엔진 개발로 속도가 빨라지고 조종이 복잡해지면서 사고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17건의 추락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처음엔 조종사 과실로 돌렸지만, 기계의 오작동과 장비의 결함이 없더라도 조종사 책임만이 아니란 건 확실했습니다. 조종석이 문제였습니다. 시트의 규격과 모양, 가속페달과 기어, 앞 유리의 배치 거리, 헬멧의 모양까지 수십 년 전 조종사의 평균에 따라 설계되어 있었으니 커진 체격이 문제였습니다. 1950년 공군은 대대적인 신체 측정에 착수해 140가지 항목의 각 평균값으로 조종석을 설계해 안전성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라이트 공군기지의 항공의학연구소의 과학자 대니얼스(Gilbert S. Daniels) 중위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평균적인 조종사들은 몇 명이나 될까? 그는 먼저 4,063명의 키와 가슴둘레, 팔 길이 등 가장 중요한 10개 항목의 치수를 측정했습니다. 이 평균값으로 ‘평균적 조종사’를 각 평균값과의 표준편차가 30% 이내인 사람을 표본으로 정했습니다. 측정된 평균 키는 175cm이지만 ‘평균적 조종사’의 키를 170cm에서 180cm로 정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개개인의 수치를 평균적 조종사의 수치와 일일이 대조했습니다. 공군에서는 대다수가 평균치에 들 걸로 봤습니다. 조종사는 외형상 평균 체격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에 대니얼스도 깜짝 놀랐습니다. 10개 전체 항목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은 4,063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10개 항목 가운데 임의로 3개를 골라, 이를테면 목둘레, 허벅지 둘레, 허리둘레만을 비교해봐도 3개 전체 항목에서 평균치에 드는 경우는 3.3%가 안 되었습니다. 평균적인 조종사 같은 건 없었습니다. 평균적인 인간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대니얼스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7년 전 지방신문 <클리브랜드 플레인 딜러>는 건강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전형적 여성상 ‘노르마(Norma)’와 신체 치수가 근접한 여성을 뽑는 대회를 열었습니다. 노르마는 유명한 부인과 의사 디킨슨(Robert L. Dickinson)이 젊은 성인 여성들의 신체 치수를 바탕으로 만든 조각상. 그는 15,000명의 평균값이 여성의 전형적 체격, 즉 정상 체격을 판단하는 지표라고 믿었고, 당대의 과학자들 역시 그의 생각과 같았습니다. 어느 유명 인류학자는 노르마의 체구를 인체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했고, 예술가들은 노르마의 아름다움을 찬양했으며 체육 담당 교사들은 이를 젊은 여성의 이상적 표상으로 삼아 학생들에게 운동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9월 23일, 드디어 마사 스키드모어라는 늘씬한 흑갈색 머리의 백인 여성이 우승자로 뽑혔습니다. 신문에선 스키드모어가 춤, 수영, 볼링 등 취미까지도 여성 체형에 어울린다고 대서특필했습니다. 대회 전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신체 치수가 평균치에 근접해 박빙의 승부를 점쳤습니다. 그런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9개 항목 중 5개 항목인 경우에도 3,864명 여성 중 평균치에 든 건 40명도 안 되었고, 9개 전체 항목에서 평균치에 가까운 여성은 스키드모어를 포함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노르마 닮은꼴 찾기’ 대회 관계자들은 이 결과를 놓고 미국 여성들은 대체로 건강하지 못하고 몸 상태가 나쁘다고 결론 짓는 분위기였습니다. 대니얼스만은 그러나 달랐습니다. “평균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특징이 본래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평균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교육은 아예 정규분포로 표준화된 틀에 학생을 가두고 ‘평균 이상’이 될 것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대학입시에서는 똑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서 성적순으로 뽑습니다. 더 나은 방법이 달리 없어서 그럴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은 그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평균은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웠을 땐 가능합니다. 사람의 재능, 세상 살아가는 역량은 신체 치수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똑같은 지능이라도 그 내용은 제각각입니다. 90점이면 붙고 85점이면 떨어지는 현실에서 시험문제 잘 풀어 서울대를 간 친구를 부러워할 건 없습니다. 평균 점수, 평균 등급, 평균 재능을 추종하는 현실에선 인간의 잠재력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구현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평균적 인간? 그런 거 없습니다. 방학 중 읽어볼 만한 책이 있어 소개합니다.
평균의 종말 : 네이버 도서 (naver.com)
"한국항공대역 탄생을 자축합니다!”
화전역이 마침내 ‘한국항공대’역으로 재탄생합니다. 서울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17분 걸리는 다섯 번째 역, 2호선 홍대입구에서 갈아타면 11분 만에 네 번째로 도착하는 역입니다. 일반시민들에겐 인근의 3호선 화정역과 혼동되는 여전히 낯선 역이름이 화전역입니다. 마을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게 지명인데 숨겨진 뜻은 모릅니다. 꽃밭을 뜻하는 ‘화전(花田)’은 이곳 지역이 서울 인근에서 원예가 활발했던 덕분에 얻은 이름입니다. 1992년 시 승격 전까진 고양군 신도읍 화전리가 옛 지명입니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3년제 국립항공학교로 개교한 이듬해 서울 용산(한강로 65번지)으로 옮긴 후 다시 이곳(당시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화전리 200-1번지)으로 이주한 게 1963년입니다. 대학이 들어오면서 경의선에 정차역이 생겨나자 역 주변엔 사람이 모여들고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부지를 물색하러 왔더니 정문 쪽엔 침술 하는 집과 돼지 키우는 집 둘만 있었지.” 1976년 신입생 당시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신 은사님들로부터 내가 들었던 얘기입니다. 우리 대학이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일군 지 꼭 60년 되는 해에 역명을 보상받은 셈입니다. 세상 변하고 경의선이 전철로 바뀌면서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복선화 전철이 건설되면서 화전역과 울타리 하나 사이에 지었던 구건물들과 정문이 헐리면서 새로 매입한 부지에다 새 건물들을 지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습니다. 활주로 너머로의 캠퍼스 이전이었습니다. 당시 정든 캠퍼스를 내주면서 전철역의 이름에 소홀했던 건 아쉬운 대목입니다. 한국항공대역은 그때 탄생했어야 했습니다.
航大 구성원 여러분!
‘한국항공대’역의 탄생을 자축합니다. 선거공약을 실천한 49대 총학생회의 노력과 성공을 축하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노고가 큰 힘이었습니다. 새로운 역명 짓기보다 훨씬 어려운 개명이 가능했던 건 화전지역 주민들의 합심 덕분입니다. 두 차례 설문조사와 직능단체의 민원 제기, 시장 초청 간담회에는 각종 규제로 묶여 낙후된 이곳 지역을 새로운 ‘캠퍼스타운’으로 바꿔 달라는 주민들의 호소가 담겨있었습니다. 한때 역명 변경에 반대했던 주민들도 민원에 동참했습니다. 그분들은 항공우주의 브랜드를 지닌 대학이 지역발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도 총장 취임과 함께 고양특례시에 뿌리를 둔 우리 대학이 지역과 상생하는 성공 사례가 될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올봄엔 총학생회의 착한 가게 ‘항술랭’ 캠페인에 11항공단까지 동참해 화전의 상권 활성화를 시작했습니다. 지역사회와 맺은 약속은 이제 탄력이 붙어 하나씩 이행될 것입니다.
지금 추진 중인 화전역 지하도 보수공사가 마무리되면 내년부터 찻길 위의 전신주가 사라지고 화전역 1번 출구와 화전 상가를 잇는 보행로가 새롭게 정비될 것입니다. 전국의 전철역 지도와 안내판을 모두 바꾸는 작업이 내년부터 진행되는 동안 ‘한국항공대’ 전철역 일대는 서서히 대학 문화가 생동하는 캠퍼스타운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한국항공대역을 드나드는 5천명의 재학생과 교직원은 이제부터 캠퍼스타운 건설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역명 변경은 KAU의 브랜드 홍보에도 도움이지만, 화전을 ‘대학의 거리’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VISION 2025’로 우리 대학의 국내외 위상이 높아질수록 고양특례시와 시민들은 KAU가 지역사회의 소중한 자산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화전은 한국항공대가 곧 브랜드입니다. 풍부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실천이 미흡했던 짐을 이제 벗고자 합니다. 향후 역명 변경과 더불어 항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캠페인에도 탄력이 붙을 것입니다. 변화는 본래 어려운 일이지만 낡은 프레임을 걷어내야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대학의 도전과 혁신은 계속됩니다. 우선 화전을 새로운 대학 문화의 거리로 만들어 봅시다. 지난 5월 올렸던 메시지대로 하면 됩니다.
총장의 메시지-17 “화전을 확 바꿉시다”